12월 말 크리스마스 이브에 진행한 첫 프로젝트
입사한 지 9개월이 지났을 무렵, 다음 해 3월에 개원하는 병원의 진단검사 정보시스템 구축을 위한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다. 나를 포함하여 3명이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는데 처음 방문한 날은 여유롭게 작업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인데다가 다음 날이 크리스마스여서 긴장된 분위기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진단검사실의 담당자 분들을 만난 후 작업할 업무를 확인하기 위해 검사실의 장비들을 확인했다. 작업할 업무에 대한 내용을 확인한 이후부터는 PC 세팅 및 인터페이스 개발 작업에 착수했다. 첫 프로젝트인 만큼 실수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강했다. 특히 같이 작업하는 선배 개발자 분들의 염려를 사지 않기 위해 하나 하나 신중하게 작업하고자 했다.
2020년이 끝나다
그렇게 회사에 들어온지 9개월이 지났고 프로젝트 작업을 본격적으로 착수할 무렵 2020년의 마지막 날을 맞이했다. 원래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마지막 날은 출근을 하지 않았다. 그때 출근을 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연말이어서 그런지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힘들게 고생하면서 잘 버텨왔다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올 한 해 잘 마무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개발에 집중하느라 친구들이나 지인들을 거의 만나지 못했고 그러다 보니 심적으로 쫓기는 느낌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때 어떻게 버틸 수 있었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심지어 당직 근무를 병행해야 하는 경우 퇴근을 하고 있는 도중에 전화가 오는 바람에 지하철역 중간에 내려 벤치에서 원격 지원을 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새벽에 잠을 자다가도 갑자기 프로그램이 안 된다고 연락이 오면 부리나케 노트북을 켜고 원격으로 지원하는 날도 많았다. 병원은 24시간이다 보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락이 오는 경우가 많다. 병원의 진단검사 파트, 응급 파트 이외에 다른 파트에서 개발 업무를 맡고 있다면 이러한 상황을 피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과거를 회상하며 스스로에게 고생했다고 얘기했다. 그렇게 2020년의 연말과 마지막 날이 지나가고 있었다.
격동의 새해, 그리고 때아닌 다른 곳으로의 외근
새해가 되었고 본격적으로 프로젝트 진행을 위한 개발 및 인프라 구축 작업에 착수했다. 생각보다 고려할 것도 많았지만 가끔 여유 있을 때는 근처 편의점에서 음료수도 마셨다. 이전에 경험했던 장비들도 있었기 때문에 예상보다 개발 작업이 더 빨리 끝나는 케이스도 있었다. 내가 담당하고 있는 업무 이외에 선배 개발자의 작업을 도와주는 경우도 종종 있었는데 다행히 어렵지 않아서 잘 마무리했고 프로젝트 진행은 순탄하게 흘러갔다. 보통 프로젝트를 할 때 개발 실력이나 협업이 정말로 중요한데 내가 느낀 바로는 시간이 점점 갈수록 협업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열심히 하고자 하는 의지만 계속 유지한다면 개발 실력은 늘 수밖에 없다.
이는 내가 직접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다. 교육센터에서 하는 개발 환경과 현장에서 하는 개발 환경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프로그래밍 언어를 어떤 것을 쓰고 프레임워크는 어떤 것을 활용하고 이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물론 프로그래밍 언어나 관련된 지식, 프로젝트 경험이 어느 정도 있다면 적응하는 속도가 더 빠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직접 개발을 해보면 그 압박감과 부담감은 거의 하늘을 찌를 정도로 다가온다. 예를들어 여러 명이 진행하는 프로젝트인 경우 혼자서 개발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선배 개발자 분들과 개발 진척도를 확인하면서 작업 상황을 일일이 공유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중요한 프로젝트인 경우 담당자에게 일일 진행상황을 항상 보고해야 하고 특별한 이슈가 발생하지 않았을 경우 퇴근을 할 수 있다. 협업을 잘해야 하는 상황에서 여러 업무를 처리하다 보면 정신이 없거나 멘붕이 오는 상황이 있는데 실력도 실력이지만 멘탈을 잘 지키며 업무방향과 정리를 잘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던 어느 날, 오전에 부장님의 연락을 받았다. 어느 사이트에서 인터페이스 개발 의뢰가 들어왔으니 이번 주 안으로 해당 사이트에 방문하여 작업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프로젝트 기간 중간에 다른 지역으로 외근을 몇 번 갔는데 이번 외근은 그중에서 첫 번째였다. 어쩔 수 없이 외근을 가야 했다. 참고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데 해당 외근을 가는 날이 내가 연차를 가기로 예정된 날이었는데 연차를 쓰지 못하고 외근을 가게 된 것이다. 뭐... 어쩔 수 없었다. 사실 회사를 다니면서 연차다운 연차를 사용한 적이 거의 없었다. 연차 기간에도 계속 연락이 왔고 업무의 연장선과도 같은 연차가 부지기수였다. 늘 어디를 가더라도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지 않으면 안 됐다. 돌발상황이나 긴급한 지원이 필요할 때를 대비하여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는 것은 필수였다. 여행을 다닐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외근을 갔다. 해당 사이트는 마포에 근처했는데 우리 집에서 마포까지는 생각보다 멀었다. 예전에 직장에서 서울 사는 사람들을 부자라고 얘기했던 적이 있었다. 왜냐하면 적어도 서울에 있으면 출퇴근을 할 때 웬만하면 1시간 이내로 회사에 출근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나는 서울이 아닌 수도권이어서 어디를 가더라도 기본 1시간 이상은 걸렸다. 어쨌든 오전 일찍 일어나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마포로 이동했다. 마포에 거의 도착할 무렵에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예전에 내가 작업했던 다른 병원에서 갑자기 뭐가 안 된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지하철로 이동하는 중이었는데 담당자 분이 많이 급하다고 하시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중간에서 내려 원격 지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벤치에 앉아서 30분 정도 작업을 했고 다행히 이슈가 잘 해결되어 목적지로 이동할 수 있었다. 이렇게 돌연 어디선가 연락이 와서 갑자기 안 된다고 확인해달라고 하면 참으로 당황스럽다. 특히 신입 때는 더더욱 그랬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나아졌지만 가끔 귀찮음과 짜증이 밀려올 때도 있었다. 하...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담당자의 요구사항과 이슈를 해결하는 것이 나의 업무였고 서비스가 제대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신뢰를 지킬 수 있는 길임은 분명하니 말이다.
그렇게 목적지에 도착한 이후 나는 작업에 착수했다. 점심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도착을 해서 그런지 검사실 주변 분위기가 한산했다. 나도 일단 짐을 정리하고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검사실로 돌아왔다. 보통 지방으로 외근을 가면 식대 지원이 되는데 당시에는 서울이나 수도권으로 외근을 가면 식대 지원이 되지 않았다. 최근에는 복지 사정이 나아져서 지역 상관없이 식대 지원이 된다고 들었다. 조금이라도 나아졌으니 뭐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암튼 점심을 먹고 돌아와서 작업을 시작했고 작업은 3시간 만에 끝났다. 5시가 되기도 전에 작업을 끝냈으니 가히 성공적이었다. 이렇게 작업이 빨리 끝나는 날은 가히 선물같은 날이다.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지고 개인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당직인 경우에는 의미가 없다. 언제 연락이 올지 모르니 가슴 졸이면서 퇴근을 할 수밖에 없다. 근데 어떻게 보면 당직의 고통이 행복의 의미를 더 증폭시켜주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4시 30분쯤에 검사실을 나왔다.
>> 10화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