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남겨진 현장에서 개발을 시작하다
나와 같이 작업을 했던 동기는 일정이 있어서 다른 곳으로 출장을 갔고 다음 날은 나 혼자서 작업을 진행했다. 정해진 기간이 있었기에 마감시한까지 개발을 끝내야만 했다. 이 일정 외에 다른 일정이 이미 잡혀있었기 때문에 개발을 잘 마무리하고 다른 사이트로 넘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발 속도가 나지 않아 이거 이러다가는 주어진 시간 내에 다 못 끝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다. 결국 나는 선배 찬스를 쓸 수밖에 없었다. 전화를 드렸고 다행히 시간이 맞아서 내 노트북으로 원격을 들어와 현재 진행 중인 개발 업무에 대한 내용을 하나하나 설명해주셨다. 짧은 시간임에도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다. 역시 경력자는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다. 그리고 마지막 날 저녁 정도가 되어서야 작업이 끝났다. 처음으로 납품이란 걸 하는 순간이었다. 한편으로는 기뻤지만 또 한편으로는 앞으로의 일정을 걱정하며 퇴근을 했다. 다행히 해당 병원과 집과의 거리가 멀지 않아서 퇴근하는 데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유일한 위안이었다.
본격적인 출장의 시작 그리고 당직
시간이 지나면서 서울, 수도권 이외에 지방에 위치한 병원과 보건소, 의료재단 등으로 외근을 나가는 일이 잦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외근을 많이 나간 덕분에 지방으로 여행을 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졌다. 좋은 점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여기저기 다니면서 업무에 대한 흐름을 조금씩 익혀나갔고 개발을 하는 방법이나 노하우도 하나하나 알아가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당직 순번 차례가 되어서 주간 당직을 맡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당직 업무 어떻게 했는지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다. 그때만 해도 팀원들 수가 많지 않았을 때여서 몇 주 단위로 번갈아가면서 당직 근무를 했다. 당직 근무는 주간 단위로 했는데 다음과 같은 일을 진행한다. 퇴근하기 전 본사 번호를 특정 팀원의 핸드폰 번호로 돌려서 퇴근 후 고객사에 대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담당자를 당직근무자로 지정한다. 주간당직은 사수 1명, 부사수 1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두 사람의 번호를 통해 전화를 받을 수 있도록 설정을 해두면 그때부터 헬게이트 오픈인 것이다. 퇴근을 하는 도중에 전화가 오기도 하고 잠을 자고 있다가 전화를 받기도 한다. 낮에 근무할 때도 고객사 유지보수 요청이 들어오면 무조건 당직근무자가 우선적으로 처리를 해야 한다. 그야말로 한 주의 워라밸은 Bye Bye인 것이다.
특별한 이슈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당직근무는 대체가 불가능했다. 거의 필수적으로 거쳐야 했기 때문에 달마다 헬게이트가 열리는 건 막을 도리가 없었다. 퇴근하는 도중에 전화가 올 경우 전철에서 노트북을 켜서 바로 원격 지원을 하거나 도중에 다른 역에 내려서 작업을 했다. 이런 상황이 꽤나 많았다. 심지어 새벽에 출근할 때도 버스에서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모르는 전화로 연락이 와서 “여기 어디인데요, 인터페이스가 안 되네요. 빨리 좀 봐주세요.” 하면서 원격 지원을 부탁하기도 했다. 가끔은 흔들리는 차 안에서 원격 지원을 하다가 멀미가 난 적도 있었다. ‘이거 이거 사람이 하는 일 맞아?’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어떻게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자고 있다가 오는 경우는 정말 최악이다. 새벽에 전화가 왔는데 하필 또 급한 건이었다. 사이트 특성상 새벽에 검사를 돌리는 곳도 있었는데 그런 곳에서 연락이 올 경우 거의 몇 시간 동안 모니터링을 해야 했다. 근데 문제는 이슈에 대한 원인을 찾는 게 생각보다 만만치가 않아서 어디서부터 문제가 생긴 것인지 도무지 확인이 되지를 않았다. 원래 큰 이슈일 경우 예상외로 문제를 빨리 찾을 수 있었는데 로그나 다른 정보를 확인해도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슈들은 그만큼 시간이 오래걸릴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해당 인터페이스를 개발한 사람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일 경우 자고 있는 사람을 깨워서 이거 확인해주실 수 있냐고 연락을 하기가 난감해서 결국 내 스스로 볼 수밖에 없었다. 사수가 있기는 했지만 정말 심각한 이슈 아니면 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하지만 역으로 당직을 통해 업무에 대한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걸 장점이라고 말해야 할지 나로서는 판단이 서지를 않지만 어쨌든 그렇게 매달 당직근무를 하면서 업무 흐름을 파악하며 개발에 대한 시야를 조금씩 넓혀나가고 있었다.
차근차근 진행되는 납품, 그리고 첫 납품한 사이트의 유지보수 연락
그 후 나는 집에서 3시간 이상 걸리는 수도권의 한 병원을 방문하여 납품 작업을 진행했다 (지금부터는 개발을 통해 특정 사이트에 인터페이스를 제공했다는 키워드를 납품이라고 칭한다). 어려운 작업은 아니었는데 QC 검사 연동을 해야 하는 작업도 같이 있어서 약간 애를 좀 먹기는 했다. 이 사이트는 나 혼자 방문한 게 아니었다. 동기와 선배가 같이 동행했다. 작업은 어렵지 않아서 금방 끝났는데 테스트할 검체가 없어서 오전에 작업을 마무리하고 오후에 바로 철수했다. 그리고 다음 날은 나 혼자 그곳을 다시 방문하여 해당 인터페이스의 테스트를 진행했다. 작업은 무사히 끝났고 검수확인서를 받은 이후 나는 이동을 할 계획이었다. 근데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내가 처음으로 납품을 진행하였던 사이트에서 갑자기 검사가 제대로 되지를 않는다는 내용으로 연락을 준 것이었다. 순간 당황해서 일단 급하게 근처에 있는 카페로 갔다. 카페는 와이파이가 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원격 지원을 하기에 아주 적합한 장소였다. 카페에서 나는 노트북을 열고 어떤 상황인지를 확인했다. QC 검사가 제대로 진행이 되지 않아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었다. 원인을 찾고 찾다가 코드 상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수정한 이후에 다시 테스트를 진행했다. 다행히 잘 마무리 되었고 카페에서 조금 쉬었다가 점심을 먹은 후 철수하면 되겠지 하고 밖을 나가던 찰나 또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다른 문제로 인해 인터페이스에 문제가 있다고 연락을 준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서 원격 지원을 통해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은 1시간, 2시간이 지나 어느덧 오후 5시가 되었다. 세상에나… 카페에 무려 6시간을 넘게 있었다. 카페 입장에서는 저 사람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지 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미안할 따름이다. 다행히 손님들이 많이 방문하지 않아서 자리를 무사히 지켜가며 작업을 할 수 있었지만 에러 하나 잡기 위해서 그토록 고군분투 했다는 게 지금도 믿기지가 않는다. 결국 5시 반쯤 되어서야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퇴근을 하기 위해 전철을 탔고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지체할 수밖에 없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아직 내 실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번 경험을 통해 내 능력을 더 끌어올려야 빨리 퇴근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찬바람이 조금씩 불기 시작하는 가을, 진짜 고생은 지금부터?!
10월이 되었을 때, 나는 전북에 있는 한 병원에 출장을 갈 일이 생겼다. 전라도라… 그 당시 나는 굉장히 오랜만에 전라도를 방문했다. 어렸을 때 전주를 가봤던 기억을 제외하고는 전라도를 가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이후에 출장 때문에 전라도를 자주 갔지만 10월에 방문했던 전라도는 뭔가 낯설게만 느껴졌다.
목적지는 익산이었다. 익산에 가기 위해 SRT를 예약했다. 난 이때쯤에 이미 알고 있었다. SRT 예약은 정말로 힘들다는 것을. 그래서 SRT를 예약할 때는 항상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안 됐다. 미리 예약을 해두어야 여유를 가지고 이동할 수 있다. 10월 중순에서 말쯤… 그때 익산의 날씨는 좀 선선했다. 익산역에 도착 후 바로 목적지인 병원을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이틀의 일정이 주어진 상황에서 나는 바쁘게 검사실로 향했다. 일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내가 개발한 인터페이스를 납품하기 위해 간 것이 아니라 팀장님께서 담당하시는 병원에서 팀장님의 납품 작업을 지원하기 위해 투입된 것이었다. 즉, 개발해놓은 프로그램은 있는데 통신을 하기 위해 필요한 설치 작업들을 하기 위해 해당 병원을 방문한 것으로 메인 역할이 아닌 서브 역할로 업무를 수행하였다.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길어져서 밤늦게까지 진행됐다. 사실 이때 나는 노하우가 많이 부족했다. 1년 반 정도가 지난 이후에는 이런 작업을 엄청나게 빨리 끝낼 수 있었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가 경험을 통해 나만의 해결방법을 익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입사한지 7개월 정도 지난 상황에서 그것도 처음 방문하는 사이트의 전산시스템과 인터페이스를 접하다 보니 여러모로 작업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나와 같이 작업한 팀장님은 예전에 나와 같이 실사를 돌았던 그 팀장님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팀장님께 미안했지만 다행히 잘 이해해주신 덕분에 무사히 작업을 끝낼 수 있었다.
작업이 끝나고 나니 밤 11시 정도가 되었다. 저녁을 제대로 먹지 못해 숙소로 가서 대충 저녁을 때운 후 씻고 바로 잠을 잤다. 오전에 일찍 출근하여 결과를 확인해야 한다는 팀장님의 얘기가 있었던 터라 아침을 거르고 병원으로 급하게 갔다. 다행히 검사는 문제없이 잘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12시까지는 모니터링을 계속해야 한다는 팀장님의 지시를 받고 점심시간까지 대기했다. 특별한 문제없이 잘 마무리되어서 검수 확인을 받고 병원을 나왔다. 병원을 나오는 도중에 팀장님께서 익산역 근처 맛있는 칼국수 집을 소개해주셨다. 당시에 6,000원인가 7,000원인가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맛이 기가 막혔다. 일을 끝내서 그런지는 몰라도 무척이나 맛있었다. 가게는 완전 옛날 느낌이었는데 역시 분위기가 주는 그 맛이 있는지 몰라도 맛있게 잘먹고 서울로 올라갈 수 있었다.
11월의 고독하고 배고픈 주말!?
11월에 나는 대전으로 외근을 갔다. 생전에 대전을 갔던 적이 있었나 할 정도로 대전은 나와 인연이 거의 없었다.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야 대전을 갈 일이 없었으니 말이다. 코레일 본사가 대전에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아무튼 대전에 도착해서 나는 목적지로 향했다. 새로 들어오는 장비와 연동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개발하는 작업이었는데 문제는 해당 병원이 원격 지원에 제한이 있는 환경일 뿐만 아니라 폐쇄망 환경이어서 생각보다 작업 난이도가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폐쇄망 환경에서 작업을 하는 입장인지라 어떻게 해야 할지 참으로 막막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처음 방문하는 사이트 또는 폐쇄망 환경인 사이트 같은 경우 방문을 하기 전에 답답했던 적이 많았다. 뭐가 어떻게 진행이 될지 가늠이 되지 않아서 경험이 그만큼 중요했다. 문제는 그 경험이란 게 직접 겪어봐야 한다는 것인데 어쩔 수 없이 시행착오를 거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성장하기도 했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 날은 금요일이었다. 검사실을 방문한 이후 나는 본격적으로 개발 작업에 착수했다. 개인 노트북에서 개발 작업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USB는 사용할 수 없었고, 원격도 소용없었다. 원격 지원을 받으려면 팀원들 중에 해당 병원 담당자의 계정을 통해서만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다들 바쁜 마당에 원격 지원이라는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스스로 모든 작업을 진행하기로 마음먹고 개발 작업에 들어갔다. 이 작업은 쉽지 않았다. 현장에서 직접 데스크톱을 활용하여 병원 내부 서버에 접속하여 IDE 툴로 개발을 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낯설었다. 그래도 작업을 하다보니 뭔가 잘 풀리나 싶었다. 개발을 집중해서 하다 보니 점심시간은 흘러갔고 어느덧 저녁시간이 되었다. 사실 개발은 이미 끝난 상태여서 테스트를 진행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제대로 되지를 않았다. 원래는 당일치기여서 마무리하고 바로 서울로 올라갈 예정이었으나 결국 올라가지 못했다. QC 검사도 제대로 진행이 되어야 했는데 그마저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점심도, 저녁도 거르고 계속해서 작업만 하다 보니 점점 지쳐갔다. 중간중간 선배들한테 연락을 취해서 개인 노트북으로 지원을 받기는 했지만 쉽지 않았다. 병원 내부 서버는 원격을 지원받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 팀의 해당 병원을 담당하는 선배가 연락이 되어서 이슈에 대한 문제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당시 선배는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밴드에 내가 올려놓은 글을 보고 연락을 한 것이었다.
금요일 저녁 9시쯤 나는 선배의 도움을 받고 작업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11시, 12시가 되어서도 해결이 되지 않자 일단 철수했다. 숙소는 저녁 늦게쯤에 알아본 곳이 있어서 택시를 잡은 후에 숙소로 향했다. 나는 숙소에 도착하고나서도 마음이 영 불안했다. 잘 끝낼 수 있을까? 내일 토요일인데…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이게 뭐란 말인가…
신세 한탄을 하면서 잠을 청했고 다음날 일찍 일어나자마자 바로 병원으로 갔다. 과연 이 작업은 무사히 잘 끝낼 수 있을까?
>> 8화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