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시작된 교육과정
처음에 나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행여나 나보다 더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 함께 교육과정을 들으면서 수료까지 잘했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초반이어서 적응이 쉽지는 않았지만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조금씩 교육 분위기에 적응해나갔다. 이 교육은 다른 교육과정과는 다르게 숙박을 할 수 있었다. 기숙사를 마련해주었기 때문에 수업이 끝나고 야간자습까지 마치면 기숙사로 돌아가서 잠을 잘 수 있었다. 거기에 아침, 점심, 저녁을 제공해주니 이만한 교육 환경에서 공부한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엄청난 행운이 아니었나 싶다. 교육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내가 학교에서 배운 내용들이 많았다. 참으로 기분이 묘했다. 왜 학교 다닐 당시에는 이 교육과정에서 배울 지식과 정보들이 좀처럼 피부로 와닿지 않았을까?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기술을 많이 접해보지 않아서 새로운 것을 배울 때마다 두려움과 귀찮음이 앞설 때가 많았다. 하지만, 교육을 받기 위해 센터에 들어온 상황에서 취업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취업, 그래 그 당시에는 그랬다. 대단한 꿈이나 목표가 있어서 개발을 한다기 보다는 그저 단순히 취업을 하기 위해 개발을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나의 가치관이나 목표보다는 당장의 취업을 하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지금도 그 교육과정이 하나하나 기억난다. 처음에는 C언어를 위주로 배웠는데 예전에 배웠던 언어인지라 많이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 이후에 배웠던 내용들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아두이노, 라즈베리파이, AVR 마이크로컨트롤러, 디지털 논리회로, 전기전자 기초 이론/실습, 웹 프로그래밍, 리눅스 기초…
학교에서 배웠던 것들이 많았지만 배운지 시간이 꽤 지난 터라 배우는 데 시간이 걸렸다. 다행히 그렇게까지 많이 걸리지는 않았는데 이는 마음의 울림이 예전과는 다를만큼 선명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전기전자나 디지털 논리회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전공과 관련된 지식이라 필수로 공부해야 하는 것임에도 그렇게까지 흥미를 느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센터에 들어와서는 달랐다. 빵판이라 불리는 브래드보드로 회로를 구성하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어차피 마지막 프로젝트는 회로를 구성하여 진행을 해야 하기에 더더욱 학습에 집중했고 배움의 진도에 속도가 붙었다. 라즈베리파이를 공부할 때 리눅스를 접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몰라서 당황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리눅스에 대한 이해도 조금씩 나아져서 나중에 프로젝트 할 때는 리눅스를 활용하여 DB와 서버까지 전부 구축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리눅스를 공부한 게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학교 때 공부한 아두이노도 공부했는데 너무 오랜만이어서 한편으로는 참 반가웠다. 새삼 예전에 했던 것들을 센터에 와서 다시 접했을 때 뭔가 느낌이 이상하면서도 오묘했다. 결국 이것을 하기 위해 학교에서 그렇게 고생을 했던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우연이란 건 없었다. 그 당시에 나는 다른 교육생들과 비교했을 때 이해도가 높았고 수업을 따라가는 것도 제일 빨랐다. 이 교육은 나에게 있어 참으로 많은 것을 일깨워주었는데 내가 기피했던 하드웨어 관련 공부에 대한 눈을 뜨게 해주었으며 불친절하게 느껴진 소프트웨어에 친해질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해주었다.
미라클 모닝
교육받을 당시 나는 잠을 5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다음 강의 때 학습할 내용을 예습하거나 지난 시간에 배웠던 내용을 복습하면서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보내기 위해 노력했다. 오전 7시 30분부터 아침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서 아침 먹기 전까지는 계속 공부만 했다. 이렇게까지 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정말 한 가지만 생각했다. 취업. 그것만이 지금의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으니 말이다.
내가 새벽 3~4시 쯤에 일어나서 공부를 하고 6시쯤에 씻고 나면 룸메이트가 기상했다. 나보다 어린 친구였지만 나를 보고 느낀 게 많다고 하여 나와 같이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했다. 늘 아침을 둘이서 같이 먹었다. 교육 후반에는 아침을 안 먹을 때도 있었지만, 우리 둘은 한 번도 지각한 적이 없었다. 결국 그 친구 취업했다. 판교 쪽에 위치한 코딩 교육을 하는 곳이었는데 코딩 강사로 채용됐다고 들었다. 지금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최근에 연락했을 때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한다고 들었는데 아무래도 코딩 강사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았다. 어쨌든 그 친구도 꾸준하게 교육에 참여했기에 취업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중간평가
어느덧 교육은 중반에 접어들었고 10월이 되었다. 8월 말에 시작하여 9월에 개강식을 하고 10월이 되니 새삼 시간이 참 빠르다는 것을 느꼈다. 10월에는 그동안 공부했던 내용에 관하여 중간평가가 있다고 들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실습이 아닌 객관식/주관식 문제를 몇 분 안에 풀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각 교육 파트별로 시험을 봤는데 놀랍게도 내가 중간평가 최우수상을 받게 되었다. 믿을 수 없었다. 살면서 1등을 해본 적이 거의 없었는데 1등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미라클 모닝의 결과가 이런 것인가… 나는 결과에는 만족했지만 한편으로는 최종 프로젝트에 대해 걱정했다. 그래도 중간평가를 잘봤으니 내가 제대로 걸어가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어서 마음이 편했다.
교육생들간의 마찰, 줄어드는 교육생의 숫자
10월 중에 해당 센터가 소속된 학교에서 행사가 있었다. 그 행사가 끝나고 2~3일이 지난 이후에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교육생들간의 때아닌 다툼이 벌어진 것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일인지 잘 몰랐다. 하기야 사람들이 여러 명 있는 곳에서 무슨 일이든 발생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생전 처음 본 사람들끼리 만나 기숙사에서 생활하는데 무슨 문제는 없겠는가? 근데 다툼의 원인이 명확하지 않았다. 우연히 나와 다툼을 벌인 사람과의 대화에서 그 원인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룸메이트가 코골이가 심해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는 것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다툼의 당사자들은 같은 방을 쓰는 사람들이었다. 결국 당사자들 중 한 사람은 교육에 꾸준히 나오지 않았다. 10월 이후, 강의실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교육생들의 수가 줄어들었고 지각하는 교육생들도 많아졌다. 나는 어느 정도 예상했다. IT 교육은 3개월, 5개월, 6개월 만에 모든 걸 다 이해하고 학습할 수 없다. 더군다나 처음 배우는 사람이라면 진입장벽이 장난이 아니다. 꾸준히 학습할 수 있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왜냐하면 IT 분야에서 살아남으려면 성실함, 꾸준함, 정성 없이는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20명 넘게 시작했던 교육이었지만 10월이 지나서는 12~13 명 정도가 되었으니 아무나 IT 개발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10월 초가 지나고 10월 중반이 됐다.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를 위한 최종 프로젝트 기간에 접어들게 되는데…